비상사태(제1화)

2026년 1월 7일 13:03분

디모데, 요한, 누가 형제에게

샬롬!

“세탁기 언제 되는 거야?”
막내가 물었습니다.

“음….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빠가 답했습니다.

“양말이랑 속옷이랑 이제 거의 바닥이야.”
아들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일기예보 보니까 금요일이나 돼야 영상으로 좀 올라가던데…..”
아비도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럼 손빨래라도 해야지??”
“누가”
“아빠가”
“……..”

아들의 표정이 구겨졌습니다.
밍기적과 뜸을 곱배기로 들이고 있는
부친을 보면서요.

잠시 후,
그는 비장한 각오를 한 듯
묵직한 돌직구를 던졌습니다.

“내가 빨게”

마침내 작년부터 SOS를 부르짖던 옷가지들이 나왔습니다.
메두사호의 뗏목으로 변해버린
빨래통 속에서요.

화장실 앞에는
기다란 줄이 이어졌습니다.

수건, 내복, 베갯잇, 팬티, 런닝셔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렸습니다.

“아! 드디어 목욕 한번 하는구나!”

코소보 난민들의 북적거리는 소리와
세면대의 수돗물 흐르는 울림이
환희의 찬가로 오버랩되었습니다.

환희여! 환희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비누여,
낙원의 빨래들이여

— 다음 서신에서 계속 —

🖋 신동혁 올림
📅 2026년 1월 7일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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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월 7일 13:11분

빨래통을 메두사호, 화장실 앞을 난민 행렬로 비유한 장면은 출애굽기 분위기랑도 겹쳐져서—해방은 거창한 기적만이 아니라 세면대 앞의 순종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또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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