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2026년 1월 20일 14:29분

디모데, 요한, 누가 형제에게

샬롬!

고모님께서 오신 날,
특별히 궁금해하신 것이 있었는데요.
바로 세탁기입니다.

베란다에 오셔서 보시더니,
“겉으론 멀쩡한 친구가 왜 그러지” 하시더라구요.
중고로 산 거긴 하지만
이 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렇게 말씀하실 만도 하지요.

(워낙 허약 체질이라
조금만 추워도 몸살에 걸리니
흑염소라도 달아서 먹여야 할까요?)

그런데 말이지요.
제가 세탁기 동파 사건을
삼 년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요.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빨래하면서 나오는 구정물이
후쿠시마 오염수 레벨이다.
급수는 되는데 배수가 안 돼서
제가 물을 받아서 버린 적이 몇 번 있어요.
어느 날은 수십 번을 처리했는데,
시커먼 물이 얼마나 더럽던지….
헹궈도 헹궈도
구정물이 계속 나오는 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탄광에서 일할 때 입던 옷들이라 해도
믿겠더라니까요.
흑탕물 속에 떠다니는 이물질들은
또 얼마나 많던지….

둘째,
탈수되면서 나오는 물만 받아서 버렸는데도
정말 귀찮았습니다.
빨래의 전 공정을 따지고 보면
95%는 세탁기가 하고,
전 그저 물만 받아서 버린 거잖아요.
그런데도 그게 그렇게 싫더라구요.
안 해도 될 일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요.
탈수하면서 나오는 물은
또 왜 그리도 많은지….
한 번, 두 번, 세 번 받을 때마다
짜증이 막 날 뻔했다니까요!!!

셋째,
세탁기에 대해서 은혜를 모르고 살아왔다.
창조 이래 인류는
세탁기가 없는 세상에서 지내온 세월이
훨씬 더 길잖아요.
그동안 계속해서 손빨래를 해왔구요.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면서요.
만약 신윤복의 그림에 나오는 아낙네들이
통돌이를 받으면 뭐라 할까요?
평생 손에 물 묻히고 살았을 그들은
분명히 고맙게 여겼을 겁니다.

강한 한파가 시작된 오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덜컹거리던
그 친구가 다시 그리워집니다.

당연한 것은
절대 없다는 것을
늘 깨닫게 하시는 주님께
영광을! 할렐루야!

🖋 신동혁 올림
📅 2026년 1월 20일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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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월 20일 14:40분

세탁기 고장 나면 “불편” 수준이 아니라, 일상이 바로 전쟁터로 바뀌죠. 특히 구정물 레벨 묘사가 너무 현실적이라 읽다가 고개 끄덕였습니다… 겉으론 멀쩡한데 속이 무너진 상태라는 것도 사람 인생이랑 똑같고요. 그리고 “안 해도 될 일”을 억지로 하게 될 때 올라오는 그 짜증, 진짜 정확합니다. 마지막에 당연한 건 없다는 결론으로 딱 정리되는 흐름이라, 웃기면서도 묵직하게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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